“폭염에 어디 가지?” 부산 영화의전당, 7000원으로 떠나는 21편의 ‘영화 피서’

8월 말인데도 밖에 나가기가 겁날 만큼 덥습니다.

바닷가에 가자니 햇볕이 부담스럽고, 카페나 쇼핑몰은 이제 조금 지겹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늦여름에는 영화 한 편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열리고 있는 ‘서머 스페셜 2026’ 이야기입니다.

이번 기획전은 8월 11일부터 9월 2일까지 이어지며, 고전부터 비교적 최근 작품까지 

총 21편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선보입니다.

바깥은 폭염인데 극장 안에서는 편지를 받고, 해변을 거닐고, 뉴욕의 밤거리를 떠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 피서’입니다.


올해 주제는 ‘여행과 낭만, 우연 그리고 유랑’

서머 스페셜은 올해 처음 생긴 행사가 아닙니다.

영화의전당이 시네마테크 부산을 운영하던 시절인 2011년부터 매년 여름 선보여 온 기획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하나의 분위기나 주제를 중심으로 고전과 현대 영화를 다시 묶어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2026년에는 유난히 여름과 잘 어울리는 키워드를 골랐습니다.

여행

낭만

우연

유랑

21편은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뉩니다.

‘편지, 고마워’

‘박물관 기행 X 어긋난 오후’

‘밤은 길어!’

제목만 봐도 한여름 하루의 시간표처럼 느껴집니다.


아침에는 ‘편지’를 따라가는 영화

첫 번째 섹션인 ‘편지, 고마워’는 사랑과 그리움, 부재를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1948)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한 여인이 평생 사랑했던 남자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지나간 사랑을 되짚습니다.

요나스 메카스의 ‘월든’(1968)도 포함됩니다.

일상의 순간들을 16㎜ 필름에 담아낸 작품으로, 영화의전당 기획 소개에서는 메카스의 삶과 

친구들을 향한 하나의 영화적 편지처럼 설명됩니다.

조금 더 현대적인 작품으로는 에릭 보들레르의 ‘막스에게 보내는 편지’(2014)가 있습니다.

감독과 압하지야의 전 외무장관 막스 사이의 서신 교류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오후에는 박물관과 해변으로

두 번째 섹션 ‘박물관 기행 X 어긋난 오후’는 공간 자체가 여행지가 됩니다.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1946)는 한여름의 짧은 사랑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또 ‘도둑맞은 그림에 대한 가설’(1978)에서는 그림 속에 숨겨진 관계를 따라가게 되고, 

빌 포사이스의 ‘로컬 히어로’(1983)에서는 한 해안 마을에 머물게 된 외지인의 변화를 만나게 됩니다.

극장 좌석에 앉아 있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박물관 → 해변 → 낯선 마을

을 옮겨 다니는 셈입니다.

무더운 한낮에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고 여행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기획전의 매력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섹션은 ‘밤은 길어!’입니다.

낭만적인 여행 영화만 모은 것이 아닙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특근(After Hours)’(1985)에서는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연달아 휘말리는 남자의 악몽 같은 밤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

도 상영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강렬한 색채와 이미지로 풍자한 작품으로, 평범한 여름 영화제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낮에는 편지와 해변을 따라갔다가 밤에는 조금 기괴하고 위험한 영화 세계로 들어가는 식입니다.


영화만 보고 끝나는 행사도 아니다

이번 서머 스페셜 2026은 상영 외 프로그램도 꽤 풍성합니다.

8월 26일 오후 6시 30분 막스에게 보내는 편지 상영 뒤에는 에릭 보들레르 감독과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박은지 프로그래머의 특별 대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 8월 29일 오후 3시 40분 스팽글리시(2004) 상영 이후에는 영화평론가 유운성의 

특별 강연이 이어집니다.

함윤정·김은정·김필남 영화평론가가 진행하는 해설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습니다.

그냥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것보다

“왜 이 영화가 이 섹션에 들어갔을까?”

를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도 영화 애호가에게는 매력적입니다.


21편 전부 볼 필요는 없다

이런 기획전을 보면 괜히 부담부터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21편을 언제 다 보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취향에 맞춰 섹션 하나만 골라도 됩니다.

잔잔한 고전과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한다면 ‘편지, 고마워’, 여행지나 공간 자체가 중요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박물관 기행 X 어긋난 오후’, 조금 독특하고 강렬한 영화를 원한다면 ‘밤은 길어!’를 

먼저 살펴보면 됩니다.

한 편만 선택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관람료도 생각보다 부담이 적다

공개된 행사 안내에 따르면 관람료는

일반 7,000원

유료회원·청소년·경로 5,000원

수준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상영이 없는 일정으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요즘 영화관 일반 관람료를 생각하면 고전·예술영화를 특별 프로그램과 함께 볼 수 있는 

가격으로는 꽤 매력적입니다.

다만 작품별 상영시간과 부대행사 일정은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영화의전당의 최신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늦여름 부산에서 색다른 피서를 찾는다면

부산의 여름이라고 하면 보통 가장 먼저 해운대와 광안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한여름 오후 2시에 바닷가를 걷는 일이 언제나 낭만적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더운 날에는 시원한 극장 안에서 낯선 도시와 해변을 바라보는 쪽이 더 좋은 여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서머 스페셜 2026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946년 영화부터 2000년대 작품까지, 서로 전혀 다른 시대와 나라의 영화 21편을 ‘여름 여행’이라는 하나의 감각으로 묶었습니다.

밖으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영화 한 편이면 다른 시간과 도시로 갈 수 있습니다.

9월 2일까지.

부산에서 늦더위를 피해 조금 색다른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이번에는 바닷가 대신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로 피서를 떠나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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